고난 주간을 맞아
지난 주간 150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 한대가 알프스 산 중턱에 충돌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기계 고장이나 악천후 같은 외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비행기의 부조종사가 의도적으로 비행기를 떨어뜨린 것입니다. 즉 자살 비행을 한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더 기다려 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그가 우울증 증세를 앓았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잘못된 사람에게 조종대를 맡긴 결과 150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것입니다.
작년 7월 한국 광주에서 소방 헬기 한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기계 고장으로 추락을 했는데 마침 그곳이 아파트 밀집지역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떨어진다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헬기의 조종사는 그것을 피하려 끝까지 조종대를 놓지 않고 도로쪽으로 가서 추락을 했습니다. 자신은 목숨을 잃었지만 수 많은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예를 보면서 죽음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파괴적인 죽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희생의 죽음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값진 것일까요? 말할 필요도 없이 희생적 죽음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드려 다른 생명을 살린 죽음이기에 오래토록 열매가 남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희생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 가장 누추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이기에 어떤 인간의 희생도 그것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사실은 그 어떤 언어로도 설명이 안됩니다. 챨스 웨슬리의 말을 빌리자면, “어떻게 그런 일이?(How can it be)”라는 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이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고난 주일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오늘부터 한 주간을 “고난 주간” (Passion Week)으로 지킵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자취를 묵상하며 우리도 그 고난에 참예하자는 취지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이 주간을 애니암스트롱 선교 주간으로 지킵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최선의 방법이 선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 새벽에 나와 국내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적 부르심 앞에 헌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성도님들 모두의 참석을 부탁 드립니다. 샬롬!